『수학귀신』, 딸 책상에서 발견한 뜻밖의 인생 책
며칠 전, 딸의 여름방학 독서목록을 살펴보다가 낯선 제목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수학귀신』. H. M. 엔첸스베르거가 쓰고 R. S. 베르너가 그림을 그린 책인데, 제목만 보고는 '이게 뭔 책이지' 싶어서 무심코 몇 장 넘겨봤다가, 결국 앉은자리에서 끝까지 다 읽어버렸다.
수학을 싫어하는 소년 로베르트의 꿈에 매일 밤 수학귀신이 나타나서, 하나씩 수의 원리를 알려주는 이야기다. 어렵고 딱딱할 것 같은 수학 개념을, 꿈속 대화 형식으로 아주 쉽고 재미있게 풀어낸다. 딸이 학교에서 이 책을 읽어야 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나 역시 학창 시절 수학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사람인데도, 술술 읽히는 게 신기했다.
책의 구성과 내용
『수학귀신』은 총 12일 밤에 걸쳐 이야기가 진행되는 구조다. 수학을 싫어하던 소년 로베르트의 꿈속에 수학귀신 '테플로탁슬'이 하룻밤씩 찾아와, 그날그날 하나의 수학 개념을 알려주는 방식이다. 첫날 밤엔 '1'이라는 숫자에서 시작해서, 0의 의미, 소수(素數), 제곱과 거듭제곱, 무한대, 피보나치수열 같은 개념들이 밤이 거듭될수록 조금씩 난이도를 높여가며 등장한다.
이 책이 특히 좋았던 건, 어려운 공식을 먼저 던져놓고 설명하는 방식이 아니라 숫자 자체에 대한 기초 상식과 감각을 먼저 심어준다는 점이었다. 예를 들어 소수를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고집쟁이 수'라고 표현하거나, 0을 '아무것도 아니면서 모든 걸 바꿔버리는 수'라고 설명하는 식이다. 공식을 암기시키는 게 아니라, 수라는 것 자체가 왜 재미있고 신비로운지를 먼저 느끼게 해주는 구성이라 어른이 읽어도 새롭게 다가왔다.
문득 떠오른 일본 영화 한 편
이 책을 읽으면서 예전에 봤던 일본 영화 한 편이 계속 떠올랐다. 바로 『박사가 사랑한 수식』(2006)이다. 오가와 요코의 동명 소설이 원작인 이 영화는, 사고로 기억이 80분밖에 지속되지 않는 노교수가 파출부로 온 싱글맘과 그 아들 '루트'에게 매일 아침 처음 만나는 사람처럼 인사를 건네며, 숫자와 수식을 매개로 서서히 마음을 나누게 되는 이야기다.
『수학귀신』의 로베르트가 매일 밤 꿈에서 귀신을 만나 수를 배우듯, 『박사가 사랑한 수식』의 박사도 매일 아침 새로운 만남 속에서 숫자를 통해 세상과 사람을 이해해나간다. 두 작품 모두 "수학은 외우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고 사랑하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어서, 책을 덮고 나서도 한참 그 영화의 장면들이 겹쳐 떠올랐다.
나의 경험 - 매일 꿈이 아니라 매일 습관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생각이 하나 있다. 로베르트는 매일 밤 꿈속에서 수학귀신을 만나 하나씩 수의 세계를 배워간다. 그런데 나는, 경제와 돈에 대해서 그렇게 매일 꾸준히 공부하고 있나?
코로나 시기에 투자를 처음 시작하고 나서 지금까지, ISA·연금저축·IRP 같은 절세 계좌들을 하나씩 채워왔다. 2022년 하락장을 지나오면서도 꾸준히 분할매수를 이어갔던 건, 결국 매일매일 조금씩이라도 시장과 돈의 흐름을 들여다봤기 때문이었다. 수학귀신이 로베르트에게 하룻밤에 개념 하나씩만 알려주듯, 나도 하루에 종목 하나, 지표 하나씩만 이해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던 게 지금의 습관이 됐다.
요즘도 아이 명의로 연금저축에 S&P500 ETF를 함께 넣어주면서, 이 책이 말하는 '꾸준함'의 힘을 다시 한번 느낀다. 수학이든 돈이든, 결국 매일 조금씩 들여다보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이 특히 좋았던 이유
- 수학 개념을 억지로 주입하지 않고, 소년이 스스로 궁금해하고 질문하게 만드는 구조
- 무섭고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귀신'이라는 존재를 오히려 친근한 스승으로 그려낸 점
- 아이뿐 아니라 어른이 읽어도 '아, 이래서 그때 이 개념이 어려웠구나' 싶은 지점들이 많다는 것
마무리하며
딸의 독서목록 덕분에 만난 책인데, 오히려 내가 더 크게 배운 느낌이다. 수학이든 돈이든, 매일 조금씩 들여다보는 습관이 결국 큰 차이를 만든다는 걸 다시 한번 확인한 시간이었다. 이번 여름, 아이와 함께 이 책 이야기를 나누면서 "우리도 매일 조금씩 돈 공부하는 습관 만들어볼까?" 하고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던 것도 큰 수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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